고등학교 시절부터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벌써 16년을 넘게 동고동락하는 나무가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공기 좋고 물 좋은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나는 바다와 호수를 낀 채 논밭이 펼쳐진 풍경을 버스 차창 너머로 마주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막 고등학생이 된 나는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에 적응을 하는 중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커다란 나무 하나를 가져왔고 엄마의 화원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를 잡아 살뜰한 관심 속에서 커가고 있었다. 식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던 나는 우리 집 거실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볕마저도 나무가 빼앗아 가는 것 같아 질투가 났었다. “이렇게 집에 식물이 많은데 이번에는 나무야? 구아바나무라니.. 처음 보는 나무인데 예쁘지도 않네.”
마당이 있는 집도 아닌데 창고의 잡동사니들처럼 늘어나는 식물을 바라볼 때면 엄마는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좋은 점들을 하나씩 얘기하셨다.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얼마나 예쁜지 아니? 우리한테 깨끗한 공기도 주고 나쁜 게 없으니 얼마나 좋아. 얘는 나중에 열매가 생기면 엄마가 맛보게 해줄게.” 엄마는 손을 뻗어 나뭇잎을 하나씩 닦았고 셀 수 없을 만큼의 나뭇잎에도 힘들어하시지 않았다.
한 번은 나뭇잎의 색이 노래져 조금씩 말라갔고 잎이 떨어지게 되었는데 엄마는 크게 속상해하시며 영양제를 사서 화분에 꽂아주었다. 노력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엄마의 손길이 남달랐을까? 응답이라도 하듯이 예전처럼 푸른 잎을 띄고 언제 그랬냐는 듯 천장까지 가지가 뻗쳐나갔다. 신기했다. 다른 식물과 달리 이 나무는 정말 살아 있는 듯했다. 햇살을 받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나뭇잎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창밖을 향해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같기도 하고 바닷가에 태닝을 하고 누워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었고 구아바나무도 가지가 천장을 훑을 만큼 자라서 수시로 가지치기를 해야 했다. 어느 겨울,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동네가 아닌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항상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 나무에게 이사로 인하여 가지가 얼게 되었고 잠깐의 고비가 있긴 했지만 엄마의 마법 같은 손길에 나무는 본래의 모습을 돌아왔고 열매까지 열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열매 맛을 보러 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고 비염이 있는 남편을 위해서는 구아바 잎으로 된 차를 만들어 주셨다.
엄마에게 건네받은 빨간 열매를 한 입 베어 물면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 나의 10대와 20대를 함께 지냈던 구아바나무.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구아바나무가 오랫동안 함께 하기를 소망해본다.
글 = 최정화
[농촌진흥청 대변인실 뉴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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